'비싼' 호텔 결혼식의 스테이크가 맛 없는 이유
news.chosun.com | Nov 30th -0001 "우리 텐트 옆에 어떤 가족이 미니밴을 타고 왔어요. 아이들과 부모, 모두 네명이었는데 텐트가 좀 과장하면 군대 막사만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낑낑대며 그 텐트를 치는 모습이 무슨 건설 현장 같았다니까요. 텐트를 다 치더니 이번엔 텐트 주위에 담을 쌓더군요. 일종의 병풍 같은 건데 그런 캠핑장비가 있는 건 처음 알았어요. 그 사이에 어머니는 가스레인지를 꺼내서 음식을 만드는데, 뭔가 하고 슬쩍 보니까 삼계탕을 끓이더라고요. 한쪽에는 전기밥솥에서 쌀이 익어가고요. 요즘엔 오토캠핑장에서 전기도 쓸 수 있거든요. 이건 캠핑이 아니고 무슨 잔치 같았어요. 밥을 먹은 후엔 텐트 앞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는 휴대용 프로젝터로 영화를 보더군요. 아이들은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하고요. 아침에 일어나니 그 모든 장비를 해체하느라고 또 난리가 났어요. 가히 이삿짐에 견줄 만한 그 물건들이 미니밴 한 대에 모두 들어간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었죠. 짐 정리가 모두 끝나자마자, 그 가족은 흐뭇한 표정으로 차를 몰고 캠핑장을 떠났어요."
캠핑을 좋아하는 후배가 지난 여름에 한 오토캠핑장에서 본 풍경이라며 들려준 이야기다. 그 후배가 덧붙였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왜 캠핑을 나왔을까요? 거의 모든 조건이 집과 똑같은데."
캠핑 앞에 '오토'가 붙었기에 좀 더 편한 캠핑, 가족 단위 캠핑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왜 굳이 야외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지 의문이다.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난로를 들고 다니고 심지어 노래방 기계까지 싣고 캠핑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캠핑의 요체인 자연(自然) 빼고는 다 있는 셈이다. 이런 호화 캠핑에 반발해 최근엔 '최소한의 캠핑'이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미니멀 캠핑(minimal camping)'이라고도 부르는 이 캠핑은 배낭 하나를 채울 만큼의 장비만 갖고 떠나는 것이다. 식사도 레토르트 음식 위주로 간단히 하고 1인용 텐트에서 잔다. 모든 취미에는 장비를 갖추는 즐거움(혹은 고통)이 뒤따르지만 '최소한의 캠핑'은 이런 흐름을 역행하면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트렌드다.
생각해 보면 20여년 전 대학 시절에 여름·겨울마다 한 번씩 어떻게 지리산 종주를 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당시에는 고어텍스는커녕 쿨맥스도 없었다. 여름엔 반바지, 겨울엔 청바지를 입었고 군화를 신고 눈 쌓인 천왕봉에 오르기도 했다. 어느 여름엔 20㎏ 가까운 텐트를 등에 지고 간신히 천왕봉 정상에 올라 양복에 단화 차림으로 올라온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비닐봉지에 담아온 캔맥주를 마시는 걸 보고 허탈해한 적도 있다. 요즘엔 고어텍스와 중(重)등산화를 갖추고 양손에 스틱을 쥐어야 해발 293m 대모산 정상공격에 나서는 시대이니, 사람이 산에 가는 게 아니라 장비가 등산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어디 캠핑과 등산뿐이랴. 유난히 겉치레에 신경을 쓰는 우리 사회 곳곳에 '과잉 장비'투성이다. 흔히 보게 되는 과잉이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이다. 원탁에 밥상을 차려놓고 혼례를 보는 것도 우리 예(禮)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비싸다는 호텔 결혼식 밥을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몇백인분의 스테이크를 미리 구웠다가 일제히 날라주니 그 고기가 맛있을 리 없다. 게다가 좁은 원탁에 다닥다닥 식기를 차려놓아 내 것 네 것 구분이 쉽지 않다. 서양식 상차림에선 '좌빵우물'이라고 해서 왼쪽에 빵 오른쪽에 물을 놓는 데,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물과 빵을 구분없이 먹어버려 나는 물도 빵도 없는 신세가 된 적도 있다. 그렇다고 남의 잔치에서 "그건 내 빵이오" 하기도 머쓱하다. 게다가 키 큰 와인 잔 다루는 데 서툰 어르신들이 여기저기서 와인을 쏟고 민망해하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 이래저래 호텔 결혼식에 다녀오면 별로 잔칫집에 갔다 온 느낌이 없다. 이쯤 되면 '최소한의 결혼식' 같은 문화도 생겨날 법한데 아직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아침이 밝았으니 잘 살아보세 했던 덕분에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에서 반세기 만에 선진국 턱밑까지 달려왔다. 불과 두 세대도 안 돼 경제적으로 잘살게 된 것은 좋으나, 초가지붕 헐고 기와만 올렸지 구들장은 냉골인 문화는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화는 오(伍)와 열(列)을 맞춰 행군하지 않는다. 대나무처럼 직선주행하지 않고 넝쿨처럼 오르내린다. 그러나 결국 녹음(綠陰)을 우거지게 하는 것이 문화다. 남이 하는 대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 유행이다. '최소한의 캠핑' 같은 문화가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Original Page: http://t.co/iz8IUfp4
Shared from Read It Late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