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굴비·나주배·충주사과·횡성한우·참치세트…. 보낸 주소와 받는 주소는 천차만별이다. 약 1만5000㎡(4500여평) 넓이의 공간에는 다음 행선지를 재촉하는 택배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머리 위로 컨베이어 벨트와 유사한 모습의 '소포자동구분기'가 쉴새없이 택배상자를 옮기며 지역 이름이 쓰인 팻말 앞에 떨어뜨린다. 서울 강남지역 쪽 팻말 밑에는 '급'이 다른 고가 선물 상자들이 쌓이는 것도 눈길을 끈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물량이 늘기 시작했어요. 보통 어제(월요일) 선물을 부치시는 분들이 많아 오늘이 최대 피크가 될 겁니다." 주양규 동서울우편집중국 소포팀장은 "여기서 1분이라도 지체하면 배송은 몇배로 늦어진다"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17일 새벽 5시쯤,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집중국은 설 명절을 앞두고 최대치에 이른 택배 물량을 처리하느라 하얗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직원들의 얼굴에는 피곤함보다 긴장감이 엿보였다. 전국에서 광화문·동대문·용산·강남 등 서울 중심부로 배달될 택배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앞서 새벽 1~2시에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갈 선물상자들이 트럭에 실려 행선지로 향했다. 명절을 앞두고 하루 평균 200여대의 트럭이 이곳을 들락거린다.
우체국에 접수된 택배는 보통 우편집중국→다른 지역 우편집중국 →총괄우체국→집배원의 4단계를 거쳐 받는 사람의 손에 전달된다. 오후 6시 우체국이 문을 닫은 뒤 그날 접수된 택배는 먼저 우편집중국으로 이동한다. 우편집중국은 각 우체국에서 보내온 택배를 지역별로 구분해 전달하는 '허브' 구실을 한다. 소포자동구분기가 택배에 붙어 있는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를 인식해 지역별, 행선지별로 분류한다. 예전에는 사람 손으로 일일이 구분해야 했으나, 1990년 자동분류 설비가 도입돼 요즘은 시간당 1만4000여개씩 분류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이곳엔 '비상'이 걸린다. 가뜩이나 설 명절 때는 배송 기간이 늘어나는데, 밀려드는 물량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면 연쇄적으로 배송이 지연되고 고객 불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날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처리한 택배 물량은 28만여개다. 이날 전국 23개 우편집중국에서 처리된 택배를 합치면 150만여개에 이른다. 우정사업본부는 '비상 근무 기간'으로 선포한 지난 9일부터 21일까지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1160만개의 택배가 처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동서울우편집중국에는 기존 575명의 인력에 230명이 추가로 배치됐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명절 때는 배송과 상관없는 부서 직원들도 모두 지원 근무에 나선다"고 설명했다.
작업은 기계에 무리가 갈 것을 고려해 1시간30분 작업하고 20분 쉬는 방식을 반복하며, 24시간 맞교대 근무로 운영된다. 하지만 직원들은 짧은 휴식 시간마저 아까워했다. 10여년간 이곳에서 배송업무를 해온 주양규 팀장은 "며칠간은 집에 가서 씻고 바로 나온다"며 "지난해보다 물량이 늘어 더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전역으로 배송되는 택배가 한 곳에 모이다 보니 강남과 다른 지역으로 가는 선물의 '양극화' 모습도 나타난다. 다른 지역이 생활용품 등 비교적 저렴한 택배들이 모이는 데 견줘, 강남 지역은 횡성한우세트와 건강식품 등 고가 선물 상자의 비율이 높다. 게다가 다른 지역 택배들의 행선지는 용산, 동대문 등 구별로 묶이는데, 강남은 대치동, 도곡동 등 동별로 나눠지고 있었다. 보통은 총괄우체국에서 동별로 나누지만 강남은 배송량이 많기 때문에 집중국에서 미리 나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전날 오전 9시~저녁 8시 처리 현황을 보면, 강남은 2만9000개, 용산은 7400개로 큰 차이를 보였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명절 때가 되면 강남 쪽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물량이 많고 고급 선물 상자 물량도 많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16~19일에 전체 물량의 43%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해, 원활한 배송을 위해 전국에 3000여명의 인력을 추가로 배치하고 하루 평균 3200대의 차량을 투입하고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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