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6

“밀리면 끝”…야구천재 고행 나서다

"편하게 치다보면 허점 생겨 스윙속도 올리려 짧게 잡아 수십만번 휘둘러야 내것 돼"

올해 연봉 3000만원 삭감 스무번째 스프링캠프 떠나 "40대 희망 전해주고 싶다"

차 안에서 얼마를 기다렸을까. 어둠이 깔린 무등중학교 앞을 흘긋흘긋 쳐다보기를 20여분 째. 먼지 묻은 야구복을 입은 아들, 정후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얼굴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감독한테 혼났구나." 올해 2학년이 되는 정후는 뾰로통해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아들 마중도 이날(13일)이 마지막이었다. 프로 스무번 째 스프링캠프가 다가오고 있었다. '50일 다녀오면 이 녀석 또 커 있겠네….'

이종범(42)은 15일 미국 애리조나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배가 고파서, 프로야구선수가 되면 가족들이 배를 곪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시작한 야구가 벌써 34년째. 한국나이로 마흔 셋인 그는 올 시즌 그라운드에 서면 프로야구 최고령 타자가 된다. "처음 프로 입단했을 때는 이렇게 오래 할지 몰랐다. 그동안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지만 중요한 사실은 아직도 내가 현역에 있다는 것이다."

프로 입단 전부터 스프링캠프에 대한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른 중반을 넘으면서부터 더 실감하고 있다. 이종범은 "실제로 경기에 뛰냐 안 뛰냐는 일단 배제하고 체력단련하고 몸을 충분히 만들어서 경기에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만 한다"며 "실력이나 체력적인 면에서 100% 마쳐놔야 새로운 다짐이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몇년 동안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종범은 지난 시즌 6월부터 방망이를 아주 짧게 잡기 시작했다. 원래 밑으로 손가락 1~2개 공간을 남겨놨고 방망이를 잡았는데, 2개반~3개까지 위로 올렸다. 느려진 방망이 스피드를 보완해 빠른 공과 변화구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방망이를 짧게 잡으면 홈런 등 장타가 줄어들지만 안타 생산 능력은 올라간다. 실제로, 이종범은 4~5월 타율이 0.212(66타수 14안타)에 불과했으나 6월부터 시즌 종료 때까지 타율은 0.302(169타수 51안타)였다. 시즌 타율은 0.277. 때문에 '좀 더 빨리 변화를 줄 걸' 하는 후회도 생긴다.

"사람이 편하게만 치면 나쁜 버릇이 생기고, 나쁜 버릇은 금방 몸안에 파고든다. 그러다가 투수들한테 허점이 보이고, 밀리기 시작한다. 때문에 '35살 때부터 좀 더 짧게 잡을 걸' 하는 후회도 있다. 타격을 바꾸면 근육 쓰임이 달라져 수십만 번은 방망이를 휘둘러야 비로소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연습 때는 잘 됐는데, 실전에서는 자꾸 나쁜 버릇이 나왔다." 이종범은 이번 스프링캠프 동안 몸에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방망이를 짧게 잡고 치는 연습을 할 계획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훈련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현역 최고참이라는 부담감은 물론 있다. 후배들과의 경쟁 때문은 아니다. 이종범은 "가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최고참으로서 나약하거나 쓰러지지 않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게 제일 부담이 된다"고 했다. 선수생활을 함께 했던 선동열 신임 감독은 그에게 "고참으로서 솔선수범을 보여달라"고 주문한 터. 이종범은 "고참으로서 할 일만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돌이켜보면, 요즘 젊은 선수들은 조금 나약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어린 선수들 마음을 다잡아서 팀이 잘 나갈 수 있게 하는 것도 내 몫인 것 같다. 팀이 이길 수 있는 야구를 하는데 돕고 싶다."

이종범이 현재 가장 경계하는 것은 부상이다. 다치면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뛸 기회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범은 "개인목표는 특별히 잡은 게 없다. 다만 정말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다는 것만 보여주자는 생각"이라며 "40대에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짧게 곧추 잡은 방망이로 올 시즌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픈 '바람의 아들'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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