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6

‘시민정치’ 제1야당 입성…정당개혁 시동걸다

참여와 분노가 만든 결과였다. 그들은 외치지 않았다. 거리로 나오지도 않았다. 다만, 인터넷으로, 전화로 국민선거인단이 되겠다고 참여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문성근이란 배우를, 통일 일꾼을, 정치인을.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문성근 최고위원이 돌풍을 일으키며 2위로 당선된 의미다.

한때 '1위설'이 강하게 돌 때가 있었다. 그가 당대표가 된다면 정말 큰 변화가 이뤄진다는 기류가 시민선거인단을 감쌀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당일(15일) 각 포털 검색어에서 '문성근'은 수위를 달렸다. '한명숙'은 키워드에 없었다. 전당대회장에서도 그는 탁월한 선동가 기질을 선보였다. 진행자처럼 차분히 가다가, 대선 광고 '노무현의 눈물'을 낭독할 때처럼 울리다가, 마지막에는 '같이 가자'고 포효했다. 그러나 그는 모바일에서도, 현장투표에서도, 전당대회장에서도 1위를 하지 못했다. 민주통합당에 새로 결합한 시민사회 세력을 상징한 그의 정치적 능력에 대의원은 물론 시민들도 아직은 온전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물론 공직도 한번 맡지 않았던 그가 단숨에 제1야당 지도부 2위에 오른 것은 대이변이다. 문 최고위원은 자신이 상징하는 새로운 지지층과 전통적 지지층과의 '통합'을 이끌어 낸다면 차세대 주자로 우뚝 서게 된다.

우선은 4월 총선 부산 돌파가 과제다. 문성근 최고위원은 전당대회장에서 "저의 부산 북·강서을 출마를 계기로 부산을 반드시 돌파해 내겠다"고 외쳤다. 무엇보다 본인이 당선돼야 한다. '문·성·길'(문재인 노무현재단 상임이사장, 문성근 최고위원,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 바람이 거세다고 해도 아직 부산은 한나라당 땅이다. 그에게는 '부산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없다. 부산의 한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는 "문 최고위원이 출마하는 북·강서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곳으로, 민주당에서도 중량급이 출마하면 기대해볼 만한 곳"이라고 평했다.

배우로 널리 알려진 문 최고위원은 제도 정치권에 들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일찌감치 '절반의 정치인'이었다. 늦봄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의 셋째아들이자 야당 대표를 했던 문동환 목사의 조카로서 현실 정치를 가까이서 접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현장연설에서도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 목사의 재판에 방청객으로 들어가 공판 내용이 해외에 보도되게 하는 역할을 했던 경험을 얘기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때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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