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6

[세상 읽기]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네 / 이계삼

한 과목 시험이 끝난 쉬는 시간, 발 빠른 누군가가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받아온 정답을 칠판에 적는다. 아이들은 증권사 객장에 들른 개미투자자처럼 똥그란 눈을 하고 칠판 앞에 늘어서서 점수를 매긴다. 이어 1등급 권역에 있는 '에이스'들의 성적이 화제에 오른다. 누구는 100점이고, 누구는 몇 개 틀렸다더라. 소식은 빠르게 전파된다. 내가 얻은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내가 받게 될 '등급'이니깐. 1등급이 어디서 끊길지가 열띤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된다. 이런 식으로 한 계단 두 계단 내려가다 4등급을 지나면서부터 소용돌이는 잦아든다. 7등급이든 8등급이든 나머지 아이들에게 달라질 건 없으니까.

이제 이런 모습은 몇년 뒤부터는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상대평가와 내신등급제가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5년, 이 제도가 도입되던 첫해 중간고사를 앞두고 11명의 아이가 목숨을 끊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번 조처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이 난리들인가. 여기에는 한국에만 있을 것이 분명한, 교육과 입시를 둘러싼 복잡하고도 어이없는 역설이 엎드려 있기 때문이다. 상대평가와 내신등급제는 이처럼 반교육적 암종이지만, 내신 중심의 대입 전형은 교육을 둘러싼 지역간·계층간 격차를 완화시켜주는, 꽤 진보적인 구실을 했다. 2005년, 아이들이 연이어 자살하고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겠다며 문자메시지를 돌리던 그 시절, '교실에서 자는 아이들이 줄어들었고, 아이들의 수업 집중도가 높아졌다'며 내신등급제의 의의를 역설하던 곳은 다름 아닌 전교조와 였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교육적인 이번 조처를 '꼼수'로 해석해야 하는 내 마음은 편치 않다. 절대평가의 교육적 장점은 '서열화'의 압도적인 구심력에 흡수되어 내신 무력화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내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신 A등급은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해 '깔아야' 할 요건이 될 것이다. 거기에다 아이들은 수능과 온갖 종류의 대학별 고사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장관이 사랑해 마지않는 입학사정관제가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아이들의 잠재능력을 이끌어내게 될지, '스펙'으로 대표되는 신종 괴질의 창궐로 이어지게 될지는 한국 사회에 대한 평균적인 안목만 갖고 있어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벌인 다양한 활동은 일단 '에듀팟' 사이트에 미주알고주알 올리고, 담임교사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증빙자료들은 '포트폴리오'로 정리해 두어야 한다. 이들은 끝내 '스펙'이라는 수치로 계량화될 것이다. 아이들은 이들을 입학사정관 앞에서 능란한 언변으로 혹은 쌈박한 에세이로 '프레젠테이션'해야 한다. '나, 이런 사람'이라고. 수많은 한비야, 수없는 테레사 수녀가 출현할 것이다. 아이들은 도전정신과 인류애로 분칠될 것이며, 내향적인 아이들은 성격에 대한 자책감으로 힘들어하게 될 것이다.

푸념은 그만, 이제 정리하자. 상대평가와 내신등급제라는 암종이 사라진 자리에 대학별 고사와 입학사정관제를 향한 '쩐의 전쟁'이 활짝 열렸다. 시들어가던 특목고와 자사고는 소생의 기회를 잡았고, 특목고-자사고-일반계고-전문계고로 이어지는 신종 카스트가 새로운 암종으로 부풀어 오를 것이다. 사교육은 경기 부양의 호재를 찾았다. 나는 이번 조처를 '사교육판 뉴딜정책'으로 표현하고 싶다.

이 나라의 교육 제도는 바뀔 때마다 나라를 들었다 놓았는데, 소용돌이가 가라앉고 나서 보면 아이들에게 지워지는 보따리만 무거워졌을 뿐이다.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번 칼럼으로 미룬다.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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