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송년모임이 잦다. 이런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주제가 학생들의 입시, 취업 문제다. 입시난과 취업난의 실태를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다. 한번 채용공고를 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출신만 모집 정원의 5~10배가 몰려든다는 것이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과거에는 입시 전쟁을 치르고 나면 대학에서 잠시 숨 돌릴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입시 전쟁이 끝나는 순간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 10대부터 20대 후반까지 젊음을 사실상 반납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요즘 젊은이들은 한가하게 젊음을 누릴 처지가 못 된다. 그랬다가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백수'나 '백조'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뭘까? 안정적인 직장, 사회적 지위, 돈? 어떤 것도 충분한 보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연간 수천만원씩 들여 대학 보내도 다시 취업 준비를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고 학원까지 다녀야 하니 수지타산이 맞는 일인지 의문이다. 그 돈을 복리 이자로만 굴려도 자식들에게 집 한 채는 마련해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진짜 매운맛은 사회에 나온 뒤부터다. 알량한 월급을 받는 대가로 삶의 일부를 저당잡히게 된다. 그뿐인가? 결혼해서 처자식이 생기면 고용주에게 꼼짝 못한다. 현대판 노예와 다를 것이 없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유로운 삶의 일부를 반납하고 스스로 구속당하는 것이다. 미국 정치가 애들레이 스티븐슨이 "배고픈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두가지다. 세속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길이 있고, 많은 돈을 벌어 스스로 자본가가 되는 길이다. 하지만 세상과 멀어져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에 매달리고 집착한다. 첫째는 생계를 위해, 둘째는 자유를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돈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을 단순한 이기심이나 탐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빼앗긴 자유를 되찾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대다수 사람들에겐 꿈 같은 얘기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의 저자 애덤 스미스도 "한명의 큰 부호가 있으면 적어도 500명의 가난한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소수의 풍요는 다수의 빈곤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자유로울 수 없고, 자유 없이 행복할 수는 없다. 결국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는 실현될 수 없는 꿈 같은 얘기다.
다만 이런 현실을 완화시킬 수 있는 수단은 있다. 정부가 가진 힘이다. 정부는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게 함으로써 팍팍한 현실에서 숨통을 터줄 수 있다. 법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해 노동자들의 저당잡힌 삶을 일부 되돌려줄 수도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숱하게 많은 공약이 발표될 것이다. 입시난과 취업난 해소를 위한 대책도 여기저기서 쏟아질 게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허황한 약속을 믿고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들은 오늘도 입시 전선과 취업 전선에서 피를 흘리면서 싸우고 있다. 그렇게 그들의 젊음이 사라져가고 있다.
정남기 경제부장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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