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6

“9년간의 전쟁…남은 건 가족의 죽음 뿐”

"여러분의 최고사령관으로서 국가를 대표해, 마침내 이 두 단어를 말하게 돼 자랑스럽다, 웰컴 홈. 웰컴 홈, 웰컴 홈, 웰컴 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4일 미국의 이라크전 참전 장병들에게 "귀환을 환영한다"는 말을 네 차례나 되풀이했다. "미군은 이라크에서 대단한 성취를 거뒀으며, 고개를 높이 들고 현지를 떠난다"고 치켜세웠다.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 공수부대 기지를 방문해 '이라크전 종료'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오바마 정부는 12월31일까지 이라크 미군 철수를 완료하고 전쟁을 매듭짓는다. 9·11 동시테러가 터진 지 1년반 뒤인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한 지 8년9개월 만이다. 2007년 한때 17만명에 이르렀던 이라크 미군은 현재 5500여명만 남아 있다. 이미 2009년 8월 이라크에 치안권을 넘겨준 미군은 접경국 쿠웨이트로 철수하고 있는 마지막 부대와 함께 이라크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된다. 이라크엔 대사관 경비 등 최소한의 자위병력만 남는다.

상원의원 시절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오바마는 이날 연설에서 "전쟁은 시작보다 끝내는 게 어렵다"며 "이제 곧 이라크전은 지나간 역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전에 최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참전 군인들에게도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신들의 희생 덕분에 이라크 국민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기회를 맞았다. 미국은 과거 제국들과 달리, 영토나 자원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을 치렀다."

오바마의 발언은 역사적 평가를 의식한 정치적 수사임을 고려하더라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오랜 전쟁은 미국과 이라크 양쪽 모두에 엄청난 피해와 깊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지금 이라크엔 미래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외국군 철수의 기쁨과 희망을 압도한다. 정파·종파 분쟁과 석유자원을 둘러싼 지역 갈등이 고착화했다. 유전지대가 밀집한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은 중앙정부의 통제가 먹히지 않고, 망가진 경제는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체포와 사형을 반긴 세력도 많지만, 그것도 5년 전의 일이다.

오바마가 '미국의 성취'를 역설하던 날, 이라크 바그다드에선 한 여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호라 자심이란 주부는 통신에 "전쟁 9년 동안 내게 남은 유일한 이미지는 두 동생과 식구들의 죽음뿐"이라고 털어놨다.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을 거예요. 지금도 날마다 폭탄이 터지고 암살이 횡행하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1980년대 이란과의 전쟁,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의 침공을 받은 이라크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살길이 막막한 여성이 100만명에 이른다.

앞서 지난 12일 이라크의 누리 알말리키 총리는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 등과 만나 이라크 재건과 지역안보 방안 등을 논의했다. 말리키 총리는 미국 기업들에 '기회'를,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에 '지속적인 양국 관계'를 약속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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