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6

기세등등했던 ‘미국 패권’ 급속 몰락

이라크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함께 미국한테 베트남전쟁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2001년 9·11 동시테러의 충격에 빠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과 '대량파괴무기(WMD) 제거'라는 구실로 두 나라를 잇따라 침공했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를 "내 편 아니면 적의 편"으로 갈라놓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 43일 만인 2003년 5월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미군의) 임무가 완수됐다"는 승전 선언을 했다. 그해 12월엔 이라크의 한 토굴에 숨어 있던 사담 후세인을 생포했다. 그때만 해도 전쟁이 8년 넘게 지속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태는 미국의 기대와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갔다. 이라크 반군은 게릴라 전술로 끈질기게 저항했다. 이라크 정국은 정파·종파·민족 갈등이 격화하면서 극심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2004년 4월엔 이라크 주둔 미군이 현지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저지른 모멸적인 포로학대 사진과 동영상들이 폭로되면서 이라크 침공은 일찌감치 '혐오스런 전쟁'의 상징이 됐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으로 4800여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고, 8000억달러(약 932조원)가 넘는 전쟁비용을 쏟아부었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수치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 참전 장병의 30%가 정신질환과 사회 부적응에 시달리고 가정 파탄을 겪었다. 자살한 참전 군인도 수백명에 이른다. 2009년 1월엔 이라크 파병을 앞둔 무슬림 군의관이 부대 안에서 총기를 난사해 13명이 숨지는 참사를 빚었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이후 절대적이던 미국의 패권은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급속하게 퇴락하기 시작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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