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는 국제공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저성장과 높은 부채 외에도 여러 내부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고, 이에 따라 이들이 국제적인 원칙을 세우거나 다른 나라들을 자기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기는 이제 가능하지 않은 상태다.
한편으로,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 강자들은 국가 주권과 외국의 내정불간섭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흥 강자들은 국제적인 원칙을 따르지 않고, 다른 나라들에 이런 규칙을 지키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다자간 국제기구들에 투자하는 것에도 큰 관심이 없다.
결과적으로 국제적 리더십과 협력은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작동하게 될 것이며, 국제환경의 다양성과 정책적 자율성을 인정하라는 빗발치는 요구에 발맞춰 국제규칙들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주요 20개국(G20), 세계무역기구(WTO) 등은 마치 더 많은 규칙, 개별 국가정책에 대한 더 많은 통제 등이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전인 양 나서고 있다.
교과서적인 원론으로 돌아가면 '보완성의 원칙'(중앙 권력은 지방 조직이 효율적으로 못하는 기능만을 수행한다는 원칙)이 글로벌 통제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조율해야 할 문제와 각국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를 구분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은 크게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 극단에는 국경을 넘어도 아무런 부작용이 전파되지 않는 국내 정책이 있다. 예를 들어 교육정책은 어떤 국제적인 협약도 필요없고 국내 정책입안자들이 정하면 된다. 또 한 극단에는 '국제적인 공통 관심사'와 연관된 정책들이 있다. 국내 정책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정책에도 영향을 받는 문제들이다. 온실가스 배출 문제가 전형적인 예다. 이런 문제를 각국의 결정에만 맡긴다면 각국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맡아야 할 몫을 무시하기 십상이어서 국제규칙을 세워야 한다.
이런 양극단 사이에는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두가지 다른 유형의 정책이 있다. 첫째로는 '근린 궁핍화'(beggar-thy-neighbor) 정책이다. 이는 다른 나라들이 치르는 비용 덕분에 경제적 이익을 얻는 국가들이 사용하는 정책이다. 국제 자원 가격을 올리기 위해 공급을 제한하는 경우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런 근린 궁핍화 정책은 다른 나라에 비용을 떠넘기면서 자신들은 이익을 누리게 만들기 때문에 국제적인 수준에서 규제돼야 한다. 뜨거운 논쟁에 휩싸여 있는 중국의 통화정책이나 독일의 무역수지 흑자 등은 국제적인 규제를 더 받아야 한다.
근린 궁핍화 정책은 반드시 이른바 '자기 궁핍화'(beggar thyself) 정책과는 구별돼야 한다. 자기 궁핍화 정책에 따르는 비용은 대부분 자국에서 떠안게 되지만 일부는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친다. 농업보조금이나 유전자조작식품 금지 등은 아마 다른 나라에 일부 비용을 전가하게 되겠지만, 그 나라들로부터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책은 분배문제 해결이나 국민건강 증진 등을 목적으로, 경제적인 비효율에도 불구하고 집행된다. 자기 궁핍화 정책의 경우 국제규제의 필요성은 크게 줄어든다.
정책이 다양한 만큼 국제적인 대응도 다양해져야 한다. 요즘은 국제사회의 정치적 자본이 무역이나 금융규제 따위의 '자기 궁핍화' 정책을 조율하는 데 너무 많이 낭비되고 있다. 반면에 거시경제 불균형 따위의 '근린 궁핍화' 정책을 조화시키는 것에는 충분한 정치적 자본이 투입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과 협력이 부족한 지금,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의 방향을 잘못 잡거나 야망이 지나치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