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봤다. 자기 사건 담당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쐈다는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김명호 교수 사건을 다룬 영화다. 항소심 결심 재판 장면이 놀라웠다. 재판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사실심리를 마치고 구형까지 하겠다고 작정한 듯하다. 변호인은 새로운 사실관계가 나왔으니 증인신문도 다시 하고 혈흔 감정도 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재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각한다.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변호인의 조리 있는 반박에 이따금씩 "내가 너무 세게 가나?" 하는 듯 움찔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끝내 구형까지 몰고 가면서 결국 사건에 대한 자기 예단을 드러내고 만다.(재판장은 문성근이 연기했는데, 정치에서 진보로 분류되는 이 배우는 보수적인 역을 참 잘 연기한다.) 피고인은 퇴정하고, 방청석에선 달걀이 날아오고, 재판장은 감치명령을 내리고….
실제로 그날 법정에서 오간 말들을 반영했다는 영화의 대사엔 디테일이 꽉 차 있었고, 한국 법정의 권위주의적인 단면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보여주면서 별도의 자기 해석이나 주장을 달지 않은 채, 피고인의 말을 따라간다. 꽉 찬 디테일들을 다듬어 '우리 사법부는 이게 문제야'라며, 영화의 주장을 세공해내는 일을 하지 않는다. 사실관계가 다 보여주는데 달리 주장을 달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부지불식간에 영화가 실제 이 사건의 피고인과 한편이 돼버리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즉, 실제 인물에게 흠집이 생기면 영화도 흠집이 생기고 마는, 달리 말해 영화 외적 요인으로부터 영화가 독립해 있을 수 있는 영화적, 미학적 여지가 적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 트위터에선 김명호 교수 사건의 판사가 진보적인 사람이었네, 그럼 그 사람도 문제네, 그게 아니네 하는 말들이 오가고, 영화가 얼마만큼 실제 재판을 각색했느냐를 두고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차피 허구인 영화를 두고 얼마만큼 각색했느냐에 관객이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영화에서 재현된 허구의 세계와 그 안에서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 얼마나 개연성 있고 설득력 있느냐를 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분리되지 않고 있다. 거꾸로 그럼으로 해서 큰 힘을 받는다. 관객이 몰리고, 논란도 커진다. 불과 3년 전에 유죄 확정된 판결이 엉터리 재판에 기초한 것이라고, 억울한 사람이 옥살이했다고 말하는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데 논란이 안 일어난다면 그게 또 이상한 일 아닌가.
이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의 분노는 미학적으로 해결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시시비비를 분명히 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공은 사법부로 넘어갔다. 사법부는 이 영화가 제기한 재판의 쟁점을 별도로 정리한 문건을 만들었으나 언론에는 배포하지 않고, 대신 해당 재판들의 판결문을 돌렸다고 한다. 그 정도로 진화가 될까. 관객들이 느낀 의혹, 혹은 분노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설명 혹은 해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자꾸만 이 영화의 항소심 결심 재판 장면이 떠오른다. 증거 채택도, 판결도 판사가 알아서 할 테니 나중에 판결문만 보라는 식의, 소통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권위주의적 재판! 김 교수 사건의 판결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그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이 이거였다. "저렇게 하면 판결 아무리 잘해도 승복 못 시킬 거다. 피고인뿐 아니라 방청객, 관객, 국민 모두를." 독재정권 시절엔 강압으로 승복시켰지만, 이제는 소통 없이는 안 된다.
이번 논란을 대하는 사법부의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을 둘러싼 논란은, 사법부의 대국민 소통능력을 시험해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