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5

70% 찬성이라는 KTX 민영화 설문 받아보니…

지난 12월 중순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한 홍보대행사 관계자가 찾아왔다. 전문가와 여론주도층을 상대로 고속철도에 대한 표적집단면접을 하는데, 내가 그 표적에 들어간 거였다. 그는 발주처를 국토해양부 산하 교통연구원이라고 했다. 질문은 뻔한 답을 요구했다. '케이티엑스(KTX) 서비스에 만족하느냐', '왜 계속 사고가 난다고 생각하느냐', '요금은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경쟁체제를 도입해서 경영을 효율화하면 어떻겠느냐'….

그와 만난 뒤 마음 한켠의 꺼림칙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설마 했는데 보름쯤 뒤 국토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고속철도 운영사업의 분할 민영화 계획을 느닷없이 발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토부 쪽은 "전문가 여론조사에서 70%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민영화 추진 근거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국토부의 구색 맞추기에 본의 아니게 동원된 셈이다. 황당하고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국토부의 케이티엑스 민영화 구상은 독특하다.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기존 민자사업과는 구조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주려는 사업은 2015년에 개통하는 서울 수서역~부산·목포역 구간의 케이티엑스 운영권이다. 그래서 경부·호남선 고속철도 운영서비스를 놓고 철도공사와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체제에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다. 우선 비용구조가 민간사업자한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경쟁체제 이후에도 철도공사는 국민의 교통기본권 보장을 위해 적자 노선과 차량을 유지해야 하고, 기반시설 투자비나 유지보수비도 일부 떠맡는다. 반면에 민간사업자는 오로지 코레일 운영만 한다. 선로와 역사 같은 기반시설 투자 부담이 전혀 없다. 차량도 철도관리공단에서 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30년 동안 정부가 '적정 수익'을 보장하는 사업이다. 위험부담도 거의 없다. 손실이 나면 사업권만 반납하고 털면 된다. 한마디로 완벽한 특혜사업이다.

국토부는 케이티엑스 민간 운영에 따른 요금 인하 효과를 강조한다. 교통연구원의 예측에 따르면, 철도공사보다 최대 20% 요금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에 비춰보면, 국토부의 주장이나 교통연구원의 예측은 뻥튀기일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는 일단 저질러 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발뺌한 사례가 많다. 예컨대 인천공항철도 사업을 들 수 있다.

공항철도는 현대건설과 동부건설 등 민자컨소시엄이 2007년 3월 개통해 운영하다 적자 누적으로 정부가 2009년 11월 철도공사에 떠넘겼다. 민자컨소시엄이 운영하던 공항철도는 승객 수와 수입이 애초 예측치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엉터리 수요예측을 근거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부실이 발생한 데 대해 책임을 진 사람? 아직 한 명도 없다.

국토부의 민영화 예찬론은 상습적이다. 본질은 늘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국유화'였다. 이번에도 온갖 궤변을 들이밀고 꼼수를 펼치며 고속철도 분할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여론의 반발로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올해 상반기 안에 사업자 선정을 끝낸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법과 제도로 국토부를 막을 방법은 없다. 절차는 간단하다. 현행 철도사업법에 따라 국토부가 민간기업에 운송사업 면허증만 발급하면 고속철도 분할 민영화는 끝난다. 국토부의 폭주와 난폭운전이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막바지에도 기승을 부릴 것 같다. 지금 승객들은 다소 느리더라도 이정표가 확실한 안전운전을 바라는데…. 나라도 한마디 해야겠다. 그래, 봄날은 온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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