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8

‘서울시장 보선’ 불똥 차단 경호처장 경질로 꼬리 자르나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내곡동 사저와 관련해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악화한 여론에 논란이 불거진 지 1주일 만에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적지 않은 후유증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아침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전날 4박6일 일정의 미국 국빈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지 하루 만이다. 이 대통령은 전날 저녁 서울에 도착한 뒤 곧바로 방미 기간 국내에서 진행된 내곡동 사저 관련 논란의 경과와 처리 방향에 대해 참모들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과 참모들은 방미 기간 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주력하면서도, 한편으론 국내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게 사실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미 어제 내곡동 문제를 정리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오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끼칠 악영향을 차단하겠다는 정무적 판단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이 '나랏돈의 일부가 사저 터 매입에 들어갔다'고 공세를 강화하는 상황이어서, 논란을 빨리 매듭짓지 않으면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등 여권마저 한목소리로 청와대에 백지화를 요구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냥 내버려두면 내곡동 사저 논란이 늪이 돼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 등 모든 국정 현안이 표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논란이 이것으로 매듭지어질지 여부다. 청와대는 이날 김인종(사진) 경호처장이 사의를 밝혔다는 사실도 동시에 밝혔다. 경호처가 이 문제를 잘못 처리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조처로, 경질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 대통령이 이날 "본의 아니게 사저 문제로 걱정을 끼치게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한 대목이다. '본의 아니게'라는 표현은, 애초 의도는 정당했으나 방법상의 오류 또는 참모진의 실수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이 대통령의 인식을 방증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 부부가 직접 내곡동 사저 터를 둘러봤고, 아들 시형(33)씨 명의로 땅을 사면서 이 대통령 부부 소유의 논현동 자택을 은행 담보로 넣었다는 점에서 참모진의 '단순 실수'로 넘기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김인종 경호처장 경질로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건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야권은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를 고발하는 등 이 대통령의 책임을 따질 태세다. 이날 백지화 방침으로 논란이 수그러들길 바라는 청와대의 기대와 달리 야당은 관련 의혹과 자료를 계속 쏟아내고 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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