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6

진보의 계륵, 약골 오바마

공화당과의 타협 전략, 그리고 경제 및 일자리에서 저조한 성적으로 비난이 쏟아지자 오바마는 어조를 바꾸어 부자에게 세금을 올리겠다고 한다. 구체적 결과로 실현될 가망이 거의 없는 발표는 2012년 선거를 목표로 좌파 유권자들을 규합하기 위한 것일까?

2008년 6월, 민주당 대선 후보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는 환희에 찬 지지자들 앞에서 이렇게 천명했다. "우리는 이날을 기억하고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아픈 이들에게는 치료를, 실직자들에게는 좋은 일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단다. 높아지는 해수면은 낮아지기 시작하고 지구는 회복되기 시작했지. 우리는 전쟁을 종식하고 우리 국가의 안보를 지키며 지구상 마지막 희망으로 우리 국가의 이미지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고."(1)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가 남긴 명언, "후보자들은 캠페인은 시적으로, 정치는 산문적으로 이끈다"(2)를 재확인시킨 대통령은 다름 아닌 오바마이다. 좌파 지지자들 중 다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거 시카고에서 사회주의 활동가로 활동한 새 대통령이 그의 지지 기반을 발판 삼아 대선 운동에서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계획과 사상을 실행하며 정치판을 개혁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한낱 권력을 열망하는 현실주의자와 순진한 이상주의 지지자들 사이에 일어난 또 다른 사기 거래에 불과했다. 하늘의 별을 당장 따올 것 같은 유려한 수사였지만 실용주의자 오바마는 시민정신과 민주주의 신념 하나로 무장한 운동권이 돈의 힘에 의해 왜곡된 200년 묵은 미국 정치체제와 맞설 수 있는 하나의 체계를 만들 수 있다고 결코 믿지 않았다. 오바마는 협상가였을 뿐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의 공약은 바위처럼 강건해 보였지만 그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마다 그 바위는 가루로 부스러졌다. 그의 반대자들은 이런 약점을 알아채고, 당연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를 맘껏 이용했다.

바위 같던 공약, 유리 같은 정치

오바마에게는 정치는 투쟁이 아닌 합의이다. 그의 입법 전략과 수사는 끊임없이 포용과 합의, 소극적 양보를 드러냈다. 그는 공화당을 '인질범', 심지어 '납치범'에 비유해 자주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오히려 백악관 주인은 계속 적들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순순히 몸값을 내주었다. 그러나 우파는 오바마의 유명한 '양당정치'론에 전혀 관심이 없다. 2010년 여름휴가 때, '2011년 가장 절실한 소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오바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크리스마스 때 가장 바라는 것은 '협상 가능한' 반대입니다."(3) 그러나 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사 방해는 여전했다. 게다가 2010년 11월까지만 해도 상하 양원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은 진보적 개혁이 하나씩 좌절되고, 심지어 발표되기도 전에 폐기처분될 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노조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안(Employ Free Choice Act)을 노동단체가 끈질기게 요구해오자 백악관은 마지못해 지지했을 뿐, 결국 아무 결과물도 내지 못했다. 미국의 잘못된 이민정책을 수정하려는 노력도 더 이상 없었다. 반대로 이민자 축출 건수는 계속 증가했다. 모성 관련 여성의 권익은 줄어들었다. 특히 대선 캠페인 관련 재정 규제 완화(4)와 부시 정부가 도입한 세금 감면의 연장 등을 볼 때, 이렇게 지독하게 '돈'의 논리가 강조된 적은 없었다. 이같이 퇴보적 정치로 민심은 떠나고 사회적 불평등은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는 마치 그 무엇도 '양당 합의'에 대한 그의 사랑을 꺾을 수 없다는 듯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5)

2010년 중간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비참한 득표율이 예측되고 이를 뒤집을 수 없는 무능에 화가 난 오바마와 측근들은 '좌파 선거인단이 배신했다'고 성토할 뿐이었다. 백악관 주인 오바마가 의료보험 개혁안에 대한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공약했던 공공보험안을 포기하자, 진보주의자들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측근인 고집불통 람 이매뉴엘은 진보주의자들을 '빌어먹을 저능아들'(Fucking Retarded)이라고 폄하했다. 그는 곧이어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 사과했지만,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백악관 대변인 로버트 깁스는 '전문 좌파꾼'들의 실망에 대해 이렇게 빈정댔다. "그들은 우리가 캐나다식 건강보험을 만들고 펜타곤을 없애야 만족할 것이다." 오바마도 진보 진영의 실망에 거만한 반응을 보였다. 코네티컷주의 부촌 그리니치에서 열린 '1인당 3만 달러 모금' 행사에 참석한 오바마는 "아, 이런, 우리가 아직 세계 평화는 이루지 못했군요. (청중 웃음) 빨리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라고 말했다.

선거에 참패하고도 딴청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지지세력에게 비아냥대는 것은 좋지 않다. 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대로 참혹한 선거 결과를 피해갈 수 없었다. 민주당은 하원에서 63석을 잃었고, 주지사에서도 10석을 빼앗겼다. 상원에서 근소한 차이로 다수석을 유지했을 뿐이다. 주의회의 경우, 공화당은 680석을 추가로 획득해 1974년 워터게이트 파문 이후 치른 선거에서 민주당이 세운 기록(628석)을 깨뜨렸다. 역사상 민주당이 이렇게 가혹한 패배를 맞은 적은 없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완곡 어법으로, 오바마는 "당파를 떠나", "국가를 화합"하기 위한 그의 노력에 "큰 진전이 없었다"(6)고 인정했다. 그는 패배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은 채 여전히 전략을 바꾸지 않았다. 과거에는 별 문제 없이 통과된 부채상한선 증액안을 둘러싼 논쟁에서 그는 되려 앞서나가 여러 차례 '인질범'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는 한판 붙기도 전에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독립적 유권자 눈에는 정치의 비합리성을 생각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보이고 싶은 그의 절대적 의지 때문에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된 것으로 비친다.

결국 지난 8월 채무불이행을 피하기 위해 막판 합의가 이뤄졌다. 무조건 항복이나 진배없었다. 앞으로 2조4천억 달러의 경제 예산은 공공 프로그램에서 줄여야 하고, 고소득자에게는 1원도 추가로 세금을 매길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이 합의는 공화당의 요구를 98% 받아들인 것이다. 오죽하면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이를 자축했겠는가.(7) 지난 8월 3일 풍자지 (The Onion)의 머리기사는 이 협상을 제대로 짚어냈다. "민주당만큼 민주주의자에게도 고통스러운 양보."

위풍당당 보수, 지쳐가는 진보

현재의 미국 경제처럼, 진보 진영도 이런 협상에 지쳐 약해졌다. 월스트리트조차 협상 결과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부채상한선 증액 합의가 체결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우존스지수가 2.2% 하락했고, 이틀 뒤에 4.31% 하락했다. 연달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늘 그렇듯이 공화당은 오바마를 비난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오바마는 누구 탓도 하지 않았다. 그는 '타협'의 가치를 추앙하며,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좌파들을 비난하는 몫을 그의 자문단에게 넘겼다.(8) 그가 계속 반대자들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것이나 혹은 반대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을, 정치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은 주목했다.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탁월한 웅변가이다. 그러나 그의 연설에는 늘 한 가지가 빠져 있다. 모든 문제를 야기한 악인이 없다. 악인은 지워지고 객관적인 말이나 수동적 어조로 표현된다. 마치 타자의 불행에 원인이 없고 죄도 없는 것처럼 들린다. 이것이 그가 갈등을 싫어해서인지, 아니면 보수-진보 양 진영의 통치를 방해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잠재적 기부자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인지, 또는 두 가지 이유가 모두 해당되는지 불확실하다."(9)

민주당 출신으로 1960년대 이후 백악관에 입성한 제임스 카터와 빌 클린턴 대통령처럼, 오바마는 선거에서 이긴 후보자 시절보다 훨씬 보수적인 대통령의 길을 선택했다. 공화당의 억지 요구를 수용하고 난 뒤, 그는 "아이젠하워 재임 시절 이후 공공지출을 최저 수준으로 낮춘 합의"(10)였다고 자화자찬까지 했다.

밉지만 저버릴 수 없는 곤경

그러니 2012년 대선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통령은 민주당 내 경쟁자를 두려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 상원 중 유일한 사회주의자인 베르나르 샌더스는 예비선거 단계에서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것이 '묘안'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수백만 명의 미국인은 대통령에게 실망했다. 후보 시절 사회보장 체계 등 여러 사안을 공약해놓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달리 행동하는 것을 깊이 원망하며, 공화당과의 협상에서 왜 그리 약한 모습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 실망은 매우 깊다." 그리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우파로 변절한 것은 예비선거에서 반대가 없었기 때문이다."(11)

좌파 진영 누구도 이제 오바마를 생각하며 열정에 들뜨지 않는다. 히스패닉 운동가들의 불만이 높다는 것은 유명하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의 군복무 금지를 폐지한 데 감사하면서도 그가 동성애자 간 결혼을 찬성하지 않는 데 불만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낙태 권리를 회피하는 그를 비난하고, 생태주의자들은 환경 보전에 아무 진척이 없다고 그를 단정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공공의 자유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런 분노가 실제 오바마의 후보 입지를 흔들지 않았다. 오바마 본인도 느끼는 역정에 대해 사람들은 정죄하기보다는 공감하는 편이다. 진보주의자와 소수자들 사이에 대통령의 지지율은 아직 다소 높은 편이다. 지지자들 사이에 그에 대한 분개는 일단 뒤로 미뤄졌다. 텍사스 출신 신정론자인 제임스 리처드 페리 같은 공화당 예비선거 후보들의 광기에 대한 우려가 절절하기 때문이다.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한 현 대통령은 2008년의 역사적 승리를 재현하려면 이같은 공포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 평소 투표하지 않는 학생과 사회적 소수자들도 오직 우파의 극단적 행태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오바마에 대한 실망을 뒤로하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경험에 비춰보면 진보주의자들의 지지를 당연한 것으로, 심지어 이를 모욕하는 대선 전략은 정치적 자살 행위이다.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길 요구하는 지지자들을 깔보며 그들의 신뢰를 심각하게 저버렸다. 이를 지속하면 어떤 공화당 후보가 나오든 투표날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어쨌든 오바마는 미국인이 가장 우려하는 점과 관련해 내세울 업적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일자리이다. 지난 9월 실업률은 여전히 9.1%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참담한 결과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일찍이 없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자신이 '중심'임을 믿는 듯하다. 슬프게도 우리는 중심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한 역사의 순간에 살고 있다.

____________________

글 / 에릭 앨터먼 Eric Alterman 주요 저서로 (Nation Books, New York, 2011) 등이 있다.

번역 / 박지현 sophile@gmail.com

____________________

(1) Jeff Zeleny, 'Obama clinches nomination; First black candidate to lead a major party ticket', , 2008년 6월 4일자.

(2) Kevin Sack, 'Cuomo the orator now soliloquizes in book form; Disclaiming greatness, he labors on: An embryonic idea here, an honorarium there', , 1993년 9월 27일자.

(3) Marcus Baram, 'Alter's 'The Promise' Epilogue: Obama team's Dysfunction prompted lack of focus on jobs, Bill Clinton annoyed at White House', www.huffingtonpost.com, 2010년 12월 30일자.

(4) 로버트 매체스니·존 니콜스, '미국 권력의 막후, 금·언 복합체 시대', , 2011년 8월.

(5) 세르주 알리미, '우파와 거래하는 중개의 달인', , 2010년 1월.

(6) Richard Wolffe, , Crown Publishing Group/Random House, New York, 2010.

(7) 'CBS Evening News', 2011년 8월 1일.

(8) Ben Smith, 'Tense moments at common purpose meet', , 2011년 8월 3일자.

(9) Drew Westen, 'Whatever happened to Obama', , 2011년 8월 7일자.

(10) Jared Bernstein, 'A few more comments on the pending deal', , www.jaredbernsteinblog.com, 2011년 8월 1일.

(11) 'Why Obama's base won't revolt', , www.thedailybeast.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