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7

[세상 읽기] 청중 민주주의 / 박상훈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라는 말이 있다. 정치학자 베르나르 마냉이 서구 민주주의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만든 개념이다. 대개는 '정당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정당 민주주의란, 투표권을 갖게 된 여성과 노동자들이 대중정당을 조직해 귀족과 부르주아 중심의 '의회주의'를 붕괴시키면서 만들어졌다. 정당 민주주의를 이끈 중심 동력은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진보정당들이었고, 이들이 지지를 늘려감에 따라 다른 정당들도 대중정당화 노력을 했다. 정당간 경쟁이 공동체를 분열시킨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사회 통합에 기여한다는 것도 경험하게 되었다. 노동조합을 확대하고 새로운 매체를 만들고 지역에서 다양한 상호부조조합을 이끈 것도 정당 활동가 내지 조직원들이었다. 이들이 시민들 사이에서 정치적 선호 형성의 중추적 역할을 했고, 향후 어떤 정당의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는 전망적 투표를 조직했다. 이렇게 해서 선거는 시민들의 집합적 의지를 표출하는 민중적 장이 될 수 있었고, 복지국가로 가는 정치적 힘을 대중화하는 계기도 되었다.

청중 민주주의란 정당 민주주의가 퇴조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시민은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주권자가 아니라 후보의 이미지나 그들이 제기한 쟁점에 반응하는 수동적 청중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선호 형성 과정에서 정당의 역할은 약화되고 정당 일체감을 갖지 못한 신규 유권자층이 늘어남에 따라 집단으로 투표하기보다 개인으로 투표하는 경향이 커졌다. 정당보다 인물을 중요하게 만든 또다른 요인은 당파성을 갖지 않는 중립적 대중매체의 급성장이었다. 소속 정당보다 개인 이력이 좋은 사람, 그중에서도 의사소통 자산을 더 많이 가진 미디어 친화적 인물이 정치를 주도하게 되면서 정치적 내용보다 이미지가 중요해졌다. 서로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히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많아졌고 감정의 언어는 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고학력 무당파 내지 부동층이었다. 이들의 지지를 얻고자 미디어와 인터넷 전문가도 중용되었다. 중립성을 앞세운 여론조사기관도 큰 몫을 했다. 전문가와 전문기관이 정치 해석자 내지 여론 판독자의 기능을 함에 따라 정당의 기능은 더욱 왜소해졌다.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당 일체감을 갖는 일도 경시되었다. 그러면서 나타난 매우 중대한 변화는 정치 변화의 주기가 매우 짧아졌다는 사실이다. 인물과 쟁점에 따라 유동하는 여론 때문에 선거가 정치 불안정을 동반하는 일이 많아졌다. 사회적 쏠림 현상이 잦아지면서, 주체적 판단 능력을 갖춘 유권자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한나라당 시장의 잘못 때문에 치러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징벌투표 경향이 선거를 압도해야 정상일 것이다. '안철수 현상'으로 그 경향은 사라졌다.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고, 누가 몇 퍼센트 후보냐 하는 것으로 사태는 급변했다. 그래도 유동성은 멈추지 않았다. 상대 후보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네거티브 전략은 쉽게 효과를 발휘했고, 모두가 막연한 여론의 추이에 이끌리는 상황은 계속되었다. "얄미워서", "실망해서" 다른 후보 찍겠다는 말은 해도, 어떤 서울시를 바라고 어느 후보, 어느 정당이 그 기대에 가까운 대안이어서 투표하겠다는 말은 듣기 힘들다. '희망버스'로 상징된 절박한 노동문제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진보정당들의 존재감도 찾아보기 힘든 선거가 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당 민주주의의 길은 멀어지고 청중 민주주의가 때 이르게 심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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