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28

“용인캠퍼스와 통합 안돼” 외대학생들 씁쓸한 투쟁

지난 26일 오후 3시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서울캠퍼스 노천극장. 이 학교 총학생회가 소집한 비상학생총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재학생 8796명 가운데 1500여명이 모였다. 총회 구성요건인 '재학생 10%'를 훌쩍 넘긴 숫자다.

이날 총회는 본교인 서울캠퍼스와 분교인 용인캠퍼스의 통합 등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학교 쪽에 "학생들과의 합의 과정을 거치라"고 요구하기 위해 소집됐다. 총회를 마친 학생들은 오후 6시께부터 학교 본관을 1시간 정도 점거하기도 했다. 박원 총학생회장(국제통상학과 4학년)은 "이번주까지 학교 쪽이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음주부터 수업 거부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쪽은 최근 전체 학생들에게 보낸 '본·분교 통합에 관련하여'라는 제목의 전자우편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 선진화' 방침에 따라 본·분교를 통합하지 않으면 국고 지원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언론사 등의 대학 평가에서 20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총회에 참가한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되레 "본·분교가 통합되면 용인캠퍼스 학생들과 우리가 같은 등급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베트남어과 4학년 신아무개(28)씨는 "삼수 끝에 어렵게 이 정도 서열의 대학에 입학했고, 연세대나 고려대도 본교와 지방캠퍼스 학생들을 분리해서 대우하고 있는데, '용캠'(용인캠퍼스) 학생들이 나와 같은 졸업장을 받게 되면 내가 손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인 서울'(서울 소재 대학 입학)을 했는데, 용캠 학생들이 학벌세탁을 하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학교생활 4년 만에 처음 학생총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외대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학내 정보포털사이트 '훕스라이프'(hufslife.com)에서는 용인캠퍼스 학생들을 비하하는 표현도 볼 수 있었다. 일부 학생들이 "총학생회의 본·분교 통합 반대운동은 차별과 학벌주의를 강화한다. 비상학생총회를 거부하자"는 내용을 담은 문건을 돌렸지만, 노천극장 한쪽에는 이 문건이 찢어진 채 버려져 있기도 했다. 문건을 작성한 중국어과 4학년 양아무개(23)씨는 "학생들의 불안감은 이해하지만, '내 밥그릇을 빼앗긴다'는 인식만으로 이 사안을 보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누군가에겐 이겼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겐 패배하는 존재로 남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대자보는 붙이는 족족 찢겨지고, 소통을 위해 남긴 휴대전화 번호로는 지지 문자보다 항의 문자가 더 많이 온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영문학과 4학년 이윤지(24)씨는 "학교 쪽의 일방적인 행정이 학생들의 학벌 콤플렉스와 불안감을 건드린 것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면 분노가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캠퍼스 학생들의 본·분교 통합 반대 움직임에 대해 김기정 외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장(아프리카어과 3학년)은 "일부 서울캠퍼스 학생들의 감정적인 비하 표현과 편협한 우월주의에 용인캠퍼스 학생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화과)는 "대학 교육이 획일적인 줄세우기의 도구가 돼 파행으로 치닫고 있고, 대기업은 학벌에 따라 취업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소비자의 차원에서 '브랜드'를 따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학벌사회'라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학생들의 이런 비윤리적인 행태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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