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1

원희룡 “서울시장 후보 내지 않는 것도 방법”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자초한 것이니 후보를 내지 않고 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국민들이 한나라당이 반성할 줄 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미래의 청와대라고 할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문제제기와 비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되고 있다. 다양성과 역동성이 없는 정치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낼 동력이 없다. 한나라당이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 걱정된다."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 6일 '박창식의 정치IN'에 출연해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대담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복지 확대와 부자 증세 필요성, 한나라당의 당내 민주주의, 남북관계 등 여러 현안에 걸쳐 견해를 밝혔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한나라당의 준비 상황은? 

= (안철수 바람이 일어나면서) 안철수 교수와의 가상 대결을 생각해보고 하는데 이런 것은 무망한 일이다. 대신에 안철수 교수가 이런 말을 한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보궐선거는 한나라당이 자초한 선거이고 그에 따른 댓가를 (한나라당이) 치러야 한다. 가령 한나라당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추진하지 말든지, 했는데 (투표가 무산되었으면)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와 타협해 초등학교부터라도 무상급식을 실시하든지 해야 한다고. 그것도 아니고 시장이 사퇴했으면 (한나라당은) 후보를 내지 않고 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한나라당이 반성할 줄 안다고 국민들이 받아들여줄 것이다.

- 보궐선거를 자초한 책임을 인정하고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방안을 원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안에서 적극적으로 주장해보시라. 

= 이야기 꺼내봤다. 그런데 사소한 것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겠다. 이게 절대 사소한 문제는 아니고, 그걸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려는 한나라당의 풍토가 문제다.

= 말로 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한나라당이 민심이 무섭다는 것을) 몸으로 당해야 비로소 깨우칠 것같다.

-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 앞서 복지 정책에 관한 태도를 정해야 한다. 

= 복지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절대 빈곤을 없애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결식아동 없애는 과제에는 보수가 앞장서야 한다. 교육과 보육,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는 부분은 보편적 복지 개념으로 가야 한다. 대신에 의료, 연금 등은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가는 게 옳다. 전체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늘려야 한다. 예산 절감만으로 쉽지 않다. 이 점에선 민주당도 정직하지 않다. 증세를 하되 조세 저항이 없는 방향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으면서 점진적으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저부담 저복지이고 유럽은 고부담 고복지다. 대한민국이 저부담 저복지로 계속 가서는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중부담 중복지로 가는 것에 대해 보수가 받아들이는 대타협이 필요하다. 증세는 담세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내야 한다.

- 부자 증세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데 앞장설 생각은 없나? 

= 있다. 대신에 부자들과 돈은 굉장히 겁이 많아서 공포를 앞세우면 다 숨어버린다. 이번 주민투표에서도 보편적 복지로 가면 나한테 세금 올 것같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철저하게 계급투표를 한거다. 그러니 세율을 높이는 것보다 세원을 넓게 가져가는 게 좋겠다. 아울러 상속 등 (부자들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도 들어주면서 세금을 더 내도록 해야 한다.

- 한나라당 대선후보 구도는 박근혜 의원의 단독 질주가 그냥 이어지는 건가. 

= 한국정치에서 1년은 긴 시간이다. 단정할 필요는 없다. 30회 드라마로 칠 때 처음 등장한 주연배우와 나중 등장하는 주연배우가 동일한 1인 모노 드라마라면 시청률이 나오겠는가. 1인 모노 드라마는 국민들이 식상할 수 있다.

- 한나라당이 청와대 눈치를 보는 시대가 가고 대신에 박근혜 의원의 한마디가 새로운 법이 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 그렇다. 지금 청와대 눈치를 보는 사람은 당 대표 정도랄까, 거의 사라졌다. 대신에 미래의 청와대라고 할 박근혜 대표에 대해 문제제기와 비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다양성과 역동성이 없는 정치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낼 동력이 없다. 한나라당이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 걱정된다.

- 보수 정당을 개혁하는 대표적인 젊은 피의 한 사람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친이명박계가 된 건가? 권력정치에 안주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인상이 있다. 

= 단적으로 말하면 그건 오해다. 다만 상황이 오해를 불러들인 면이 있다. 저는 친이도 친박도 아니다. 저는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미래를 외치고 헤쳐나가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나라당에 들어와 개혁파 활동을 했다. 그동안 비주류였다가 최근 1년여 동안 사무총장을 맡고 책임의 일부를 떠맡았다. 그렇게 책임에 충실한다는 연장선에서 (얼마 전) 전당대회까지 오다 보니 개혁파로서의 짠맛을 잃은 느낌은 있다. 그러나 그게 권력에 동화되서는 아니고 상황에서 비롯된 거다. 20대 젊음을 불태웠던 진정성을 다시 어떻게 불태울 것인가를 고민하며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다. 치열한 자숙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가급적 빠른 시간안에 치열함과 진정성을 갖춘 원희룡의 모습으로 국민 대중 앞에 다시 서겠다.

박창식 논설위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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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안철수는 친노세력에 이용당하고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이 9일 "안철수는 친노 세력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거듭 의혹을 제기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안철수 돌풍'에 대해 "노무현 정치세력들이 또 한번 국민들 홀리는 작전을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며 "그 양반은 이용당하는 듯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친노세력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뜻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다"며 "그 과정에서 안철수씨는 좀 빨리 빠져나온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박원순, 문재인, 한명숙씨 이런 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잘 봐야 되겠죠"라고 말했다. 그는 '증거나 제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과거에도 괜찮은 분들이 많이 그렇게 당했다"며 "개인적으로도 잘 생각해 봐야 될 일이에요. 동네(정치)가 굉장히 험악한 동네"라며 기존 '정치판'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또 박원순 변호사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후보 단일화에 대해 "단일화가 아닌 안철수 사태"라고 규정하며 "주관을 갖고 출마를 했으면 그것을 관철하려고 노력을 해야지 애초부터 나는 저쪽하고 편짜서 다시 사퇴할 건지 말 건지 결정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것"이라고 평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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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조용환 국회표결 무산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와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인준을 위한 국회 표결이 여야 이견으로 무산됐다. 국회는 9일 본회의를 열어 양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조 후보자 선출안을 처리하려 했으나, 한나라당이 조 후보자 부결 움직임을 보이자 민주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하면서 회의 자체가 열리지 못했다.

표결이 무산된 표면적인 이유는 두 안건의 처리 순서였지만 실제로는 조 후보자에 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찬반 대립 때문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안건 처리 순서가 양 후보자 동의안을 먼저 처리하고 조 후보자 선출안을 나중에 처리하는 것으로 확정되자 본회의장에서 일제히 퇴장했다. 민주당은 양 후보자 동의안은 통과되고 조 후보자 선출안은 부결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조 후보자 선출안을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맡기기로 했지만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부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조 후보자가 지난 6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천안함 발언'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은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다'는 잘못 보도된 조 후보자의 발언을 문제 삼고 있지만 속기록을 보면 조 후보자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여야는 추석 연휴 이후 본회의를 소집해 두 안건을 다시 상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조 후보자 선출안에 대한 권고적 찬성 당론을 확정할 때까지 표결에 참가하지 않기로 해 진통이 예상된다. 현 이용훈 대법원장 임기는 오는 24일 종료된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한명숙 ‘독배’ 드나

한명숙 전 총리는 "피고인 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라며 웃었다. 9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민주당 중진의원 조찬 모임에서다. 그는 "2년 가까이 되고 있는데, 재판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있고, 큰 시련을 극복하는 것도 나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돌발적인 사건으로 당에서 저에 대한 기대가 나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한 친노 의원은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고심하는 상황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독배를 든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모임에서 정세균 최고위원 등 9명의 중진의원은 "꽃가마 타는 길이 아니라 자갈길이지만, 당을 위해 출마해 달라"고 설득했다. 한 전 총리는 "추석 연휴 기간에 심사숙고해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답했다.

한 전 총리의 이날 모임 참석을 두고 출마 쪽에 무게를 두는 해석이 많다. 한 전 총리는 "내가 당원이다. 당원의 기대를 받고 있고, 당 중심의 생각을 하고 있다"며 "생각의 가닥을 잡아가는 막바지 단계다. 중진의원들의 말을 귀담아 듣겠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중진의원들뿐 아니라 '진보개혁모임'도 한 전 총리에게 '결단'을 요청하고 있다.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했던 원혜영·박영선 의원도 한 전 총리를 돕기로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내 후보군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는 한 전 총리가 출마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 경선은 '마이너리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 전 총리로선 10월 중순께로 예상되는 선고 공판 결과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한 측근은 "한 전 총리는 출마 문제를 내년 총선·대선에서 야권통합이라는 구도와 연관해 고민하고 있다"며 "한 전 총리가 출마하지 않으면 민주당의 존재감이 약해질 텐데, 개인적으로 (재판 때문에) 너무 힘든 상황이라 결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경우 범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는 '한명숙 대 박원순'의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원순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 전 총리가) 선거에 나오셔야 한다. 안 나오시면 선거가 흥행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6일 박 변호사를 만나 범야권의 단결과 승리를 위한 '상호협력'을 다짐한 바 있다. 한 전 총리의 측근인 황창화 전 국무총리실 정무수석은 "한 전 총리의 고민 지점은 반엠비(MB) 민주평화복지 전선에서 야권의 승리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과, 거기 나서는 후보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의 경쟁력이 확실한지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움직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민주 원내대변인에 김유정 의원

민주당은 9일 김유정 (사진) 의원(42·비례대표 초선)을 원내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민주당은 홍영표 의원과 김 의원의 공동 원내대변인 체제로 운영된다. 김 원내대변인은 정기국회를 맞아 원내 전략을 가다듬고 대여 공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투입됐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당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이지은 기자

천정배 “출마 과정서 심려끼쳐”

민주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에 출마할 뜻을 밝힌 천정배 최고위원이 9일 "국민 여러분과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원동지 여러분께 심려를 끼쳤다"며 사과했다.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천 최고위원은 "희망의 정치를 책임져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당의 최고위원으로서, 뜻을 피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거듭 낮은 자세를 보였다. 천 최고위원은 이날 서울시장 선거 예비후보로 서울시 선관위에 등록했다.

천 최고위원은 최근 경선 방식을 둘러싸고 손학규 대표 등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당내 경선에서 여론조사를 배제해야 한다는 게 천 최고위원 쪽 주장이었지만, 하루 전 열린 최고위원회의는 결국 여론조사가 50% 반영되는 경선을 25일 치르기로 결정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안풍에 놀란 대선주자들, ‘위기 탈출’ 모색할까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로 밀어닥친 '안철수 쓰나미'가 추석 연휴를 앞둔 정가를 초토화시켰다. 안철수 원장은 대학으로 돌아가고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는 박원순 변호사가 가장 많은 이득을 보고 있다. 그러나 바닷물이 빠지고 잔해가 드러나듯, 이번 사태로 인한 주요 정치인들의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정치인들은 "정치인으로서 굴욕감을 느낀다"거나 "무섭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안철수 쓰나미의 여파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한나라당 후보 대 범야권 단일후보'의 맞대결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10·26 재보선 결과는 여야 지도부의 거취까지 흔들 수 있다. 연말 야권통합이나 연대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12년 4·11 국회의원 총선, 12·19 대통령 선거 국면이 갑자기 확 앞당겨진 형국이다.

박근혜 대세론 최대타격
정몽준·김문수도 찰과상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12 총선과 대선의 향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치판에는 분석에 능한 '달인'들이 꽤 있다. 정당에 소속된 전략 참모들이나, 고참 당직자들이다. 이들은 특정 정치인과 상하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아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숨은 고수'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번 안철수 쓰나미와 그 이후의 정국을 진단해 보았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안철수 현상을 '반짝 거품'이라고 했다. 김기현 한나라당 대변인은 안철수-박원순 회동에 대해 '좌파들의 정치쇼'라고 했다. 단견이거나, 의도적인 폄하다.

어쨌든 안철수 원장이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정치적 현실이다. 안 원장이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졌고, 결과적으로 더욱더 갈채를 받았다.

'반한나라당'을 선언했다가 박근혜 전 대표를 치켜세우는 등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 것도 특이했다. 정파나 이념을 초월한 사람으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에 대한 지지계층은 20~30대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인 것으로 확인된다. 안 원장이 취하고 있는 정치적 스탠스와 지지계층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불일치'가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정가에서 사라졌다. 청춘 콘서트도 9일로 끝났다. 그렇지만 언젠가 정치를 시작하려면 이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안철수 원장이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서울시장을 '행정직'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정치 경험이 전혀 없으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자리에 도전하려는 '무모함'을 보였다. 안 원장에게 가끔 조언을 하는 사람 중에 김종인 전 의원이 있다. 최근 발언을 간추리면 이렇다.

손학규 리더십 허약 노출
정동영·천정배 신뢰 추락

"언론에서 안철수 원장을 대선후보로 자꾸 띄우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선후보를 하려면 일단 정치인으로 직업을 바꿔야 한다. 안 원장도 정치를 하려면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 먼저, 정치인으로서 훈련을 쌓고 국민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안철수 원장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처음에는 서울시장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안철수 원장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김종인 전 의원의 조언대로 총선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차차기를 노릴 수도 있고, 아니면 2012 대선에서 '한판승'을 노릴 수도 있다. 어쨌든 당분간 그가 국민의 관심권에서 사라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고 말해, 이번 일을 '남의 일'로 여겼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기존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폭발한 것이다. 정치를 '아날로그'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한 태도는 '이승만-박정희 프레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과거 독재자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기존 정치인들은 국회에 모여서 싸움이나 하고, 대통령인 나는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상징 조작을 했다. 이 프레임은 전두환, 노태우는 물론이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도 부분적으로 작동했다. 정권에 대한 국민의 비난을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떠밀면 대통령은 욕을 덜 먹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차기 대선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각종 여론조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철수 쓰나미에서 그가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치 개혁, 새로운 인물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강해질수록, 이 대통령의 레임덕은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문재인·유시민 건재속
범야권통합에 촉매제

박근혜 전 대표는 깊은 내상을 입었다. 치명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무튼, 경상은 아니다. 친박 진영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흔들리지 않던 압도적 지지율이 처음으로 추월당했기 때문이다. 친박계인 구상찬 의원이 '김황식 총리 차출론'을 들고 나온 배경에는 '박근혜 대세론'을 지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안철수 파동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는 현장 정치 강화를 들고 나왔다. 안철수 원장과 '진정성 대 진정성', '현장 대 현장', '이미지 대 이미지'로 정면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옳은 선택일까?

박근혜 전 대표가 2007년 대선에서 실패한 것은 '박근혜 시대의 대한민국'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철수 쓰나미는 외부에서 밀려온 것이다. 외부로 나가면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정치인의 주 활동 무대는 정당과 국회다. 제도권 안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불러온 시스템을 본질적으로 개혁해야 할 텐데, 박 전 대표가 아직 그런 부분에 눈길을 돌리는 것 같지는 않다.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

박 전 대표로서는 다행히 종전 지지층이 와해하지는 않았다. 복구할 밑천은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고정 지지층 30%를 제외한 나머지 70%가 결집해 '박근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설'이 일정부분 확인됐다. 박 전 대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박근혜 흠집내기'에 몰두하고 있는 정몽준 의원, 중앙무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김문수 경기지사는 결정적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한나라당 사람들이다. 쓰나미와 함께 밀려온 쓰레기 더미에 의해 상당히 많은 찰과상을 입었다고 볼 수 있겠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다. 특히 손학규 대표가 가장 많은 상처를 입었다. 우선, 리더십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연일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에게 치받혔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모습을 보여 대표 권위에 치명상을 입었다.

손 대표는 서울시 주민투표가 끝난 뒤 상황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손 대표와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라는 논쟁을 1주일만 끌고 갔어도, 안철수, 박원순은 치고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천정배 최고위원 등 10여명이 일제히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무상급식' 국면은 '인물론' 국면으로 급속히 바뀌었고, 외부의 참신한 인물들이 나서자 민주당 내부 인사들은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총선·대선 국면 조기화로
주자들 입지 재설정 예고

한명숙-박원순 회동을 주선한 이도 손학규 대표가 아니라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었다. 현재 야권통합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세력은 민주당, 그리고 친노무현 성향 정치인들과 시민단체가 결합한 '혁신과 통합'인데, 민주당이 주도권을 '혁신과 통합'에 빼앗기고 있는 모양새다. 민주당 안에서도 손 대표가 대선주자로서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있다.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은 그동안 진보 색채를 강하게 띠면서 당 전체의 균형추 역할을 해 왔지만, 이번 사태로 당 안팎의 '신망'을 몽땅 잃었다.

문재인 이사장은 별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 자신이 안철수 원장, 박원순 변호사처럼 '비정치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덕이다. 중앙무대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김두관 경남지사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이들이 안철수 현상에 대해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는 것은 '흐름'을 거역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시선으로 보면 '혁신과 통합'에 참여하고 있는 친노무현 성향 인사들 상당수가 구정치인이다. 말 그대로 '혁신과 통합'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면 이들이라고 해서 마냥 안전지대에 있다고 볼 수가 없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