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자신의 대선 스케줄에 맞춰 움직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 이제 당의 존망이란 문제가 들이닥쳤다."(한 친박 참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어쩌면 그의 대선일정표 전체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중대한 선택이다. 친박계인 유승민 최고위원을 비롯한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의 동반사퇴에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쳤다. 홍준표 대표는 7일 의총 뒤 물러나지 않았지만 어떤 형태든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을 극도로 꺼려온 친박계 다수파도 "더는 우회할 수만은 없다"(이한구 의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박 전 대표 쪽은 지난 2일 벌어진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태에 대한 홍준표 대표의 대처를 보고서부터 조기 등판 상황을 경우의 수에 넣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박 핵심의원은 "의총 한번 했다고 홍 대표 물러나라는 소리가 잠잠해지겠느냐"며 "박 전 대표도 상당히 심각하게 상황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박 전 대표는 최고위원 3명이 사퇴한 뒤 열린 의총에서도 홍준표 대표의 진퇴문제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자 당혹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심 의원들의 쇄신 요구에 부응해 조기 등판하는 모양새를 취하려 했다가 뜻밖의 상황에 부닥쳤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이렇게 당이 부글부글 끓는 상황에서 아무도 이를 어떻게 못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박 전 대표가 나서느냐다. 선택지는 크게 3가지다. 친박 진영에선 박 전 대표가 전권을 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홍준표 대표가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퇴하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도 내심 이 방식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박 전 대표가 전권을 쥐고 당내 개혁작업과 인재영입, 정책 쇄신을 이끌면서 재창당에 준하게 당을 변모시키는 개인기를 발휘하면 당과 박 전 대표 모두에게 활로가 열릴 것이란 셈법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무난히 비대위원장에 오를지 미지수란 전망도 있다. 다른 대선 주자들인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등이 강력히 반발하면 잡음을 피하기 어렵다.
박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전격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대표의 한 참모는 "이젠 다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대통령을 안 해도 그만이고 우선 당을 살려야 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박 전 대표가 나설 길을 터놔야 한다"며 당헌당규 개정 작업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박 전 대표가 철칙으로 주장해온 당권·대권 분리 원칙을 깨야 하는 부담이 있다.
홍 전 대표 체제를 연말까지는 지켜보고 애초 계산대로 내년 초 조기에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방법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 방식은 타이밍을 놓칠 수 있고 자칫 '정치적 불신임'을 받은 홍 대표 체제를 옹호한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당내에선 박 전 대표가 등장해도 별수 없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이날 사퇴 기자회견에서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박근혜가 아닌 박정희가 나와도 안 된다"고 말했다. 남경필 최고위원도 "비대위는 법륜 스님이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처럼 좌우를 아우르는 외부 인사로 구성해야 한다"며 "전대를 해도 박 전 대표나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등이 지도부가 되면 다시 갈라먹기 갈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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