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커피하우스의 인기가 하늘을 뚫겠다. 커피전문점들이 도시의 거리를 메우고 좁은 골목들까지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많은 커피를 누가 다 마실까?
구글에 쳐보니, 매년 한 사람이 마시는 커피의 양은 평균 400잔 정도. 5000만 인구가 200억잔을 마셨다는 얘기다. 국내 커피시장 규모도 연간 3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2010년 말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 커피하우스가 약 9400개 있었다고 하니, 1년이 지난 지금 족히 1만개는 넘었으리라.
한때 커피하우스는 한가로운 기운이 넘쳐나는 평화롭고 여유있는 공간이었다. 원기를 되살리고, 슬픔을 위로하며, 천재들을 한결 명민케 해준다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은 커피하우스를 찾았고 그곳에서 사색을 즐겼다. 커피하우스는 커피에 담긴 카페인이 피곤한 뇌에 축적된 아데노신과 싸워 맑은 두뇌를 만들어내는 각성의 격전장이었다.
수많은 천재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즐겼고 창조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지나치게 커피를 즐겼던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를 작곡할 정도였고, 오노레 드 발자크도, 이마누엘 칸트와 장 자크 루소도, 볼테르도 커피가 없었다면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했을 정도로 커피광이었다. 스타벅스가 인류에 미친 가장 큰 기여는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대 소설가들은 커피하우스에서 대부분의 작품을 쏟아낸다. 커피가 정말 창조성의 원천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이른바 '두뇌 음료'(싱크 드링크)라고 불릴 만한 음료이긴 한 모양이다.
과학자도 예외는 아니다. 초전도체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리언 닐 쿠퍼 미국 브라운대 교수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침마다 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며, 그가 낸 모든 기발한 과학적인 아이디어는 모두 한 잔의 커피에서 쏟아져 나온 것임을 학회에서 발표할 정도이니, 그의 노벨상 수상 비밀이 아마도 커피인 모양이다.
한때 창조성과 여유로움의 원천이었던 커피가 현대사회에선 수면부족으로 인한 피로를 몰아내고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각성제로 활용되고 있다. 하루 6시간도 채 자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아침에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데 커피는 필수품이며, 나른한 오후를 견디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활력제 구실을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조찬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강연을 듣고 회의를 하는 나라, 노동시간이 긴 데 비해 효율은 떨어지는 나라, 야근이 당연시되는 나라, 퇴근하는 사람들을 술자리로 잡아끄는 나라, 그래도 내일 아침엔 원기충전이길 기대하는 나라. 우리는 지금 그런 곳에 살고 있다.
접대를 위해 하루에도 몇잔씩 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는 숙제이며, 카페에서 회의를 하고 원고를 넘겨야 하는 이들에게 커피는 공간 대여료이자 무료 인터넷 사용 쿠폰이다. 홍차나 녹차로 가끔 옮겨보려 하지만, 그래도 결국 우리는 카페인으로 유지되는 삶에서 벗어나진 못한다.
'커피가 현대문명을 움직이는 데 얼마나 중요한 몫을 하는지 아는가? 커피에서 얻은 정신적 활력은 그 어떤 물질적 편익보다도 새로운 문명과 세계 평화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커피 애호가이자 푸에르토리코대 커피연구팀 리더 프레더릭 웰먼은 말한 바 있다.
과연 그럴까? 술, 커피, 방부제, 항생제, 그리고 프로작까지, 현대 문명은 화학물질들을 입속에 털어 넣어야만 겨우 돌아가는 심각한 '중독사회'다. 대한민국의 밤은 알코올이 만들어내는 활력으로 유지되는 우울공화국이요, 대한민국의 낮은 커피가 만들어내는 활력으로 지탱되는 피로공화국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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