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5

총선, 두 개의 열쇠

 난 한국의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미국의 2006년 의회 선거, 2008년 대통령 선거와 유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비교하는 이유는 양자가 너무도 흡사한 맥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민주당 정부의 한계 이후 그 반동으로서 귀환한 천민 보수 시대에 대한 지긋지긋함, 2030 세대의 본격적 반란, 소셜 네트워크 선거 혁명, 시민 정치운동의 대활약과 때로는 과잉 행동으로 인한 역풍, 진보적 트렌드로의 반전, 경제 악화, 개혁적 보수 대선 주자(존 매케인)의 등장과 그 한계 등 다 열거할 수조차 없는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다. 그래서 미국의 2006년과 2008년을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될지를 포함한 모든 숨겨진 답이 다 거기 있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미국의 2006년과 2008년 식으로만 하면 반드시 야권은 승리하고 여권은 패배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의 현 단계는 훨씬 더 복잡하고 진흙탕이며 역동적이라는 점에 어려움이 있다.

박근혜 대표, 진흙탕에서 싸워야 하는 부담

야권 처지에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가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고 혁신형 DNA도 약하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오바마 선거 혁명의 일등공신은 민주당 전국위 의장 하워드 딘이다. 그는 당내에서 위임받은 강한 권한과 21세기형 당 혁신 프로젝트를 가지고 개혁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오늘날 오바마가 자랑하는 2030 세대 혁명, 풀뿌리에 기반한 전국 정당화, 소셜 네트워크 선거 혁명 등은 다 그가 뿌린 씨앗이다. 한명숙 체제가 이해해야 할 것은 적은 권한과 부족한 혁신 DNA를 가지고도 하워드 딘 혁명의 효과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올해 승리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지금과 같이 어정쩡한 모습으로는 총선과 대선에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야권 당대표의 강력한 권한의 부족은 2006년 미국 의회선거에서 모든 전략과 공천의 총대를 멘 람 이매뉴얼(전 백악관 비서실장)이 한국에는 등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지역별로 가장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만 맞춤형으로 치밀히 공천하도록 유도했다. 과연 그의 선거 승리주의가 장기적으로 타당한지는 당시 논쟁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중간선거 대승의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왕적 총재 시절도 사라지고 미국식으로 이매뉴얼이 전권을 행사할 수도 없는 지금 한국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대표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미국 민주당과 달리 한국 민주통합당의 더 큰 곤혹스러움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어정쩡한 공존 구도이다. 결국 진보적 자유주의 정당으로 단일한 주류 정당이 서고, 생태 등의 가치에서 이를 넘어서는 급진성을 담는 비주류 정당이 힘 있게 성장하는 구도가 만들어지지 못한 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두 정당과 너무나 약한 급진 정당들이 존재하는 구도가 오늘날 이러한 어려움을 양산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설령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양당 간 타협으로 새누리당 대 야권 단일 후보라는 1대1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속성상 승리하기 가장 유리한 구도는 만들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더구나 서로 유사한 이들 간의 선명성 경쟁을 보면 이후 설령 총선에서 다수 연합이 이뤄진다 해도 과연 안정감과 진보성을 균형 있게 유지하며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낼지 회의적이다.

여권 처지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매케인 대선 후보와 달리 박근혜 대표가 대선 주자로서 자유롭게 활약할 수 없는 너무나 낡은 당의 대표라는 사실이다. 미국 중간선거는 매케인 대선 후보가 아니라 부시 당시 대통령의 선거였지만 한국 총선은 박근혜 대표의 선거이다. 당장 눈앞의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는 박 대표 앞에는 이미 '한국판 오바마'의 맹아를 보이는 문재인과 안철수가 대선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바마처럼 중도층과 핵심 지지 기반에 동시에 어필하는 그들의 강력한 브랜드와 경쟁해야 하는 박 대표로서는 매우 험난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존 매케인의 불운처럼 언제 위기가 도래할지 모르는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그녀를 두렵게 할 것이다.

결국 앞으로 한 달간은 이 어려운 한국적 상황에서 여야 중 누가 하워드 딘의 대담한 당 혁신과 람 이매뉴얼의 총선 승리 공천, 두 가지 어려운 과제 달성에 더욱 근접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위기감을 느낀 시민사회 진영의 본격적 개입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여야에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흥미진진한 승부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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