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30

대통령 ‘어젠다’를 보면 안철수 현상이 보인다

진보대통령 VS 보수대통령
한귀영 지음/폴리테이아·1만5000원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 가격만은 잡겠다."(2005년 7월 국회의장 만찬)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 (2010년 광복절 연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각각 임기 중에 했던 이 약속은 두 사람의 실패를 상징하는 대표적 언사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은 경제 문제 때문에 임기 내내 무능하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임기 말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500만표 이상의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이 대통령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정권, 부자만을 위하는 정권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이젠 지지층들마저 등을 돌리는 상황이다.

민심은 어떨까? 지난 6월 정장선 민주당 의원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5.3%가 차기 정부로 진보성향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2007년 대선에 이어 2012년 대선에도 현 정권을 심판하는 '응징투표'가 예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예측이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패 원인은 품성이나 능력 탓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전 수석전문위원은 두 대통령의 실패가 개인 품성이나 한국적 정치 지형 탓이 아니라고 잘라말한다. 좀더 근본적으로, 민심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로서 그는 대통령 국정 지지도 등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두 대통령과 민심이 어떻게 어긋났으며 이런 괴리가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분석한 독특한 책 을 펴냈다.

이 책은 권력이론 같은 종이 위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장기간의 여론조사 데이터를 통해 대통령의 통치 문제를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매달 꾸준히 1~2회씩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독자적으로 실시한 130여회의 여론조사를 총괄해온 그는 이 책에서 '어젠다'라는 틀을 선보인다. '협의' 또는 '의제'란 뜻의 어젠다는 정치적 관점에서 대통령 통치의 수단인 동시에 대중과 대통령의 관심이 만나는 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대연정 제안이나 이 대통령의 4대강 살리기, 감세정책 등이 대표적인 어젠다다. 지은이는 두 대통령이 제기한 주요 어젠다별 지지율을 분석해 두 대통령이 왜 대중과 멀어졌는지를 차근차근 짚어 나간다.

지은이는 어젠다를 대통령이 주도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동원형 어젠다'와 '반응형 어젠다'로 나눈다. 또 계파의 수장으로 지지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갈등형 어젠다'와 국가 수반으로서 제기하는 '타협형 어젠다'로도 구분한다. 강한 야당에 고전했던 노 전 대통령은 타협형·반응형 어젠다가 다소 많았다.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이 대통령은 갈등형·동원형 어젠다가 2배 가까이 많았다.

분석 결과는 흥미롭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평균 지지율이 27.9%였지만 어젠다 지지율이 50%를 넘었다. 이 대통령은 임기 초반 지지율이 33.1%였지만 어젠다 지지율은 30%대에 그쳤다. 노 전 대통령은 경제·사회 분야에서 갈등형 어젠다를 제시할 때 지지율이 높았고, 정치·행정 분야의 갈등형 어젠다는 지지율을 깎아 먹었다. 지은이는 노 전 대통령이 경제 분야의 개혁 요구를 외면하고 탄핵 이후 지지율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계속 정치개혁을 집중적으로 추진한 게 실패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이 대통령의 어젠다는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자들조차 이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분석됐다. 집권 초기에도 그의 어젠다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이 낮았던 것이 이를 보여준다. 지은이는 노 전 대통령은 민생 문제에 대해 좀더 진보적인 어젠다를, 그리고 이 대통령은 중도층을 끌어안는 개혁적 어젠다를 내놓아야 했다고 결론짓는다. 이런 결론은 대통령마다 요구되는 어젠다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분석틀은 차기 대선의 관전 포인트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복지 어젠다. 1997년 이후 매년 설문조사에서 대중이 원하는 것은 경제 어젠다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복지는 이제 여야가 꼭 짚고 넘어갈 어젠다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지은이는 두 대통령의 어젠다 분석 결과를 토대로 복지 어젠다가 진보진영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관측한다. 대중의 관심이 무상급식 같은 2차적 분배가 아니라 고용, 세금, 재벌문제 같은 1차적 분배로 확대된 상황임에도 민주당 등 진보진영은 그저 '민생 회복'이란 두루뭉술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중간한 어젠다 설정은 오히려 진보진영의 덫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안철수, 문재인 등 새로운 인물이 부각되는 이유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한다. 여야가 대중의 열망을 반영하는 새로운 어젠다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통과 공정을 상징하는 안철수 같은 새로운 인물에 기대가 쏠린다는 것이다. 복지 어젠다를 진보진영이 선점하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어떤 행보를 하느냐에 따라 이 어젠다의 주도권이 여권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지은이는 전망한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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